
이 책 덕분에
초여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책이건 영화건 기대를 말아야 해요.
문학성이 아주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깔끔하고
나름 애틋하고 뭉클합니다.
번역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긴 오랜만이었어요.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녀의 냉소적인 농담도 아주 재밌습니다.
그걸 좋아하는 제 자신이 소녀 취향인가 싶을 정도였죠.
기존에 제법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외전입니다.
처음에는 작가를 조금 얕봤는데
이 책 번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써낼 가능성이 큰
꽤 탄탄한 역량을 가진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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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에서 휴머니티로,
전장에서 가족의 품으로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화제를 몰고 온 <노인의 전쟁>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 때, 독자들은 우리의 늙은 히어로 존 페리와 거칠면서도 사려 깊은 여전사 제인 세이건이 수양딸 조이를 데리고 마침내 지구로 돌아오는 결말을 보고 뭉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게 정말 끝이야? 뭐지, 허둥지둥 끝나는 이 느낌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너무 많잖아? 이렇게 흐지부지 끝내고 토끼는 거니? 아, 짱나.
그럴 만도 하다. 장장 3부작에 걸친 소설 속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던진 수수께끼들이 채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콘수는 왜 오빈에게 의식을 주지 않았을까? 콘수의 진짜 목적은 뭘까? 오빈은 왜 그토록 조이에게 집착하고 순종할까? 뜬금없이 나타났다 생뚱맞게 사라진 늑대인간들은 뭘까? 가우 장군을 찾아간 조이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조이는 어떻게 콘수에게서 새퍼 필드 생성기를 얻어냈을까? 이밖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끝나버렸다. 말 그대로 ‘그냥’. 이런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작가를 봤나!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퍽!
이 책 말미에 나오는 작가 노트에서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독자들은 이 뻔뻔한 작가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대충 넘기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 매력적이고 너무나 흥미진진하며, 이렇게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작품이었다. 다들 한목소리로 작가의 각성과 반성과 자성을 요구하면서, ‘더’ 쓰라는 압박을 전 방위적으로 가했다. 작가는 쿨하게 ‘자꾸 그런 소릴 들으니 나도 쓰고 싶어졌다.’라고 눙치지만 에혀, 옹색한 변명이로세. 십중팔구 난데없이 날아온 짱돌에 맞을까 봐 부랴부랴 썼을 터. 안 봐도 비디오라네.
그렇게 <조이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노인의 전쟁> 3부작의 외전 격인 이 소설은 <마지막 행성>과 시간대가 같다. 즉, 같은 사건들을 전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에이, 그럼 뭐 하러 보니, 하고 콧방귀를 뀔 독자라면 안 봐도 좋다. 위에 언급한 수수께끼들의 해답을 모른 채 평생을 쓸쓸하고 궁벽하게 살다 갈 자신이 있다면 말이지.
단언하건대 <조이 이야기>는 <마지막 행성>과는 전혀 다른 소설이다. 같은 것은 시간대와 사건들뿐, 나머지는 모두 다르다. 오히려 더 치밀하고 아기자기하다. 또한 앞선 세 권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 존 스칼지의 섬세한 감수성이 빛을 발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그를 우주 활극 작가가 아니라 우주 멜로 작가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도 꽤 수준 높은 멜로. 본문을 읽지 않고 역자 후기부터 보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어리둥절할 것이다. 뜬금없이 웬 멜로? 작가가 약 먹었니? 그렇다, 아주 괜찮은 약을 먹은 게 분명하다.
이 작품을 번역하기에 앞서 기존의 3부작을 보고 느낀 점은 ‘신난다’ 그리고 ‘삭막하다’였다. 노인을 우주 전쟁에 내보낸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농담이 주는 쾌감, 거기에 영화 <스타워즈>에 나올 법한 기괴한 외계인들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 눈앞에서 피가 튀기듯 살벌한 전투 장면 등등 오락거리로서 이 소설은 한마디로 최고다. 그런 독보적인 장점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터. 여기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반면 감성적인 면에서는 삭막하기 그지없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하기 위한 온갖 가상의 테크놀로지, 인류의 우주 개척사, 우주 종족들 간의 음모와 배신 등등 지극히 비정서적인 내용이 전편을 주도하고 있다. 살고자 하는 절박함과 죽이고자 하는 처절함만 있을 뿐, 그 속에 있어야 마땅한 인간의 삶과 정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스칼지 특유의 농담마저 없다면 일종의 보고서처럼 느껴질 정도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점이 몹시 불만스럽고 아쉬웠다.
<조이 이야기>는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존 3부작의 경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십대 소녀인 조이의 눈과 귀, 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떠난 인류의 기대와 불안감, 그들이 일궈 가는 삶의 고단함을 섬세한 필치로 전하고 있다. 특히 조이가 첫사랑에 눈뜨면서 겪는 연애의 달콤함과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소녀 감성이 다분한 글로 풀어내는 솜씨가 놀랍다. 마초 취향의 소설을 쓰던 작가에게 이런 소녀 취향이 공존하다니(혹시 가끔 언니로 변신? 꺄아아아~). 자신에게 익숙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플롯의 일관성과 치밀함도 전작들을 능가한다. 이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수수께끼들이 하나 둘 풀려나간다.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진지하게. <조이 이야기>를 통해 스칼지는 작가로서의 새로운 역량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물론 액션 활극만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미안하게도 스칼지는 그런 독자만을 위한 작가의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이제는 그에게 먼 훗날 우주로 나갈 인류의 지침서가 될 만한 소설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기존 3부작이 테크놀로지와 우주 전쟁의 향연이라면 <조이 이야기>에는 휴머니티와 가족의 사랑이 담겨 있다. 전자가 요란한 랩이라면 후자는 잔잔한 발라드다. <조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우주 시대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바로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나아가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더 멀리 우주 전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 인간의 삶도 나무나 풀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살면서 언젠가는 우연히 죽는다. 설령 그 탄생과 삶과 죽음이 허무하다 해도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간다. 끊임없이 사랑하면서. 나무가 꽃을 사랑하고, 꽃이 벌을 사랑하고, 벌이 나무를 사랑하듯이. <조이 이야기>는 그런 공존의 사랑이 우주로 나아간 이야기이다. 땅에서건, 바다에서건, 하늘에서건, 우주에서건, 인간은 인간답게, 인간스럽게 살아갈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
<마지막 행성>을 보고 나서 마치 뒤를 안 닦고 변기에서 일어난 것처럼 찜찜했던 독자라면 <조이 이야기>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짜릿한 상쾌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녀의 감수성으로 풀어낸 애틋한 이야기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질 것이다. 나도 남의 글을 옮기면서 오랜만에 울컥했으니까.
나는 이 작가가 앞으로도 멋진 소설을 써내리라 확신한다. 아 참, 그러려면 스칼지를 아끼는 모든 독자의 대동단결이 필요하다. 다 같이 채찍과 짱돌을 집어 들고 한목소리로 외치자.
더 써!
부탱의 딸은 조이, 내 딸은 앙크
이 원 경



덧글
"The Sagan Diary"랑 다른 것들도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세이건의 일기>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요.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번역가가 번역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요.....
2012/08/11 17:03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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